2021년 6월 26일 토요일

일본의 부산신사와 도자기축제

노노재팬으로 일본에 관한 글을 쓰기 조차 두려운 요즘

(이게 다 일본때문이라며, 주위에 일본욕을 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코로나로 여행도 가지 못하므로, 랜선 여행을 해보았다.


일본에 부산이 있다 ? 그렇다.

(

부산시 홈페이지에서도 확인 가능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80703000197

)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이 많았는데

당시 수도였던 오사카로도 많이 갔지만, 그중의 일부는 후쿠오카와 나가사키에도 머물렀다.

울산에 왜성을 쌓기도 한 가토기요마사는, 울산사람들을 데려가 정착시킨 마을이 아직까지 울산마을(우루산마치) 라고도 불리우기도 한다.

사진출처 : http://satomi-rose.ciao.jp/homepage2/index.html


무튼, 부산신사는 나가사키현 사세보시 미카와치라는곳에 있는데

이곳은 도자기 마을로 유명하며, 매년 5월1일~5월5일까지 도자기축제를 열고있다.

(

하마젠 마츠리 (はまぜん祭り) 홈페이지

http://mikawachi-utsuwa.net/links/hamazen/

)

마을에서 만든 도자기를 구경하고 구매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한국이 전수하고 일본이 계승한~ 우리의 전통 도자기 아닌가 ! 

아직 까지 남아있는 당시 가마터에 지어진 도자기 공장


사진출처: https://www.nagasaki-tabinet.com/blog/181


무튼, 부산신사는 이 도자기와도 관련이 있는데

신사 하면, 노노재팬을 하는 흔한 한국인에겐 전범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

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신사는 침략전쟁에 참여했던 희생자(범죄자+일본인+조선인) 

들이 있는곳이지, 일본 전국에 있는 8만개가 넘는 신사가 모두 전범을 둔곳은 아니다.

신사는 고대 일본 히미코 여왕때부터 일본 토속신앙의 한 형태로 자리잡아

여러가지 신을 모시는곳이지 전범=신사는 아니란것.


무튼, 부산신사는 이름에서도 알수있듯 한국의 부산과 관련이 있을것 같은데

일본에서는 부산신사를 釜山神社 (카마야마진쟈) 라고 하는데

여기서, 카마 釜 는 도자기를 구울때 그 가마 이다. 근데 가마 요 한자는 窯 이건데

아마 옛날 부산에서도 도자기를 굽지 않았을까 ? 추측되기도...


더 놀라운점은, 이곳 부산신사에서 모시고 있는 신은

조선의 어떤 할머니라는것.

일본인들은 그 할머니를 高麗媼(こうらいばば , 코라이바바 = 고려할매)라고 부르는데

고려 = 그 고려가 맞다. 통일신라 이후 세워진 고려. 조선 이전 국호


기록에 의하면

1598년 임진왜란 때

조선인 152명 중 도자기공이 10명

그 중에 30살 여자 도공 한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서 결혼도 하고 일본식 이름도 얻고 아들도 낳고 살았다.


일본에 있던 조선인과 결혼한것이라는 기사도 있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87191

나이가 20살이라느니 빨래터에서 끌려가고 어쩌고 하는것으로 보아 픽션이 좀 들어간듯..


이 여성의 이름은 中里嫛 (なかざと・えい, 나카자토 에이, 1567 ~ 1672)

히라도(平戸)의 영주 마쓰라 시게노부(松浦鎭信)가 데리고 왔다.

이 여성 도공의 고향은 코모카이(コモカイ) 라고 했으며

남편이 죽고 8살 외아들(中里 茂右衛門, 나카자토 모에몬)과 함께 

1622년 도자기 굽는 가마를 열었는데

평소 일본인들에게 매우 자상하였고

고려할멈이라 불리우며 106세 까지 살았으며

이후 1832년 그녀의 자손들이 신사를 지어 그곳에 모셔지게 되었다. 고 한다.


이후 그녀에게서 도자기 굽는 방법을 전수받아

나카자토 가문(中里家)에서 분가한 문하생들은 다음과 같다.

横石家(요코이시 가문)、里見家(사토미 가문)、古川家(코가와 가문)

현재도 그녀의 후손들은 도자기를 굽고 있다.


일본인들이 그녀의 고향을 코모카이(コモカイ) 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에 그런지명은 없으므로, 

유추해 보자면

카이는 川(천, 냇가) 또는 浦(포, 해변) 일것이다.

코모는 곰을 읽을때 일본인들이 ㅁ 받침이 안되니까 곰을 코모라고 읽었을테고

곰이 들어가는 지명또한 없을테니 , 곰은 熊(곰웅) 이므로

아마 한자로 곰 熊 을 쓰고 곰이라고 말하니까 곰이 되지 않았을까 ? 추측해 본다.



일본 박물관에 가면 

熊川茶碗(こもがいちゃわん, 코모카이챠완) 

이라는 다도에 쓰는 그릇이 있다.

일본의 보물을 소개한 책인

古今名物類聚(고금명물유취) , 大正名器鑑(대정명기감) 에 따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코모카이챠완을 특히 좋아해 가보로 전승하려했다 한다.

(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가문이 멸족하였지만; )


여기서 코모카이(熊川) 가 웅천이다. 

곰 웅은 쿠마고 

냇가 천은 카와이므로

일본인이라면 쿠마카와 라고 해야하는데 코모카이라고 읽는다.

웅천은 현재의 부산 바로 옆 진해,창원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할머니의 고향을 코모카이라고 했던것은

웅천(진해,창원) 마을이지 않았을까

진해에는 웅천동 이라는 마을도 남아있고

임진왜란 당시 카톨릭을 믿었던 고니시 유키나가(少西行長)가 쌓은 웅천왜성도 있다.


초기엔 코모카이챠완도 만들었겠지만

그녀가 만들어 유명해진것은 唐子繪燒 이다.

唐子絵(당자문양)、祥瑞文様(상서문양)、唐草文様(당초문양) 을 붓으로 그린 조선백자이다.

도자기 그릇마다 중국 당나라 어린아이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는데, 대단한 솜씨다.

(이 지역에선 평소 일상생활에 이런 그릇을 쓴다고 ㅇㅇ)

이런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와 그릇들은 

당시 다이묘 영주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아, 이와 같은 그림을 

함부러 다른곳에서는 못그리게 하였다.

(

 그 당시에도 일본 에도(도쿄)엔 

이런 소녀 소녀한 그림체를 좋아하는 

씹덕 오타쿠가 있었단 말인가 !? 흐~엑 ㅋㅋ 

)

다이묘들이 서로 모시려고 초대 하였으나, 당시에 나이가 많아 모두 거절하고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고 한다.


여인의 몸으로 일본까지 가서 

일본의 문화유산을 만들어 내다니, 대단하다.

이런 그림의 도자기로 인기도 많았고

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가기 까지 한것으로 보아 

당시 미모 또한 출중했을터이다.

ㅅㄱ 크고 예쁜 여자들은 당시에 다 끌려가고 

납작하고 못생긴 여자만 한국에 남아있지 않은가 !


슬픈건,, 그녀의 죽기 바로 직전 유언이었다.

"棺を燃やして煙が地を這ったらこの地へ埋葬し、天へ上ったらお骨を朝鮮半島に帰してくれ"

"관을 태워 연기가 땅을 거닐면 이곳에 묻고, (연기가) 하늘에 올라가면 뼈는 조선으로 돌려보내줘" 라고... ㅠㅠ


신사에 모셔진걸로 보아, 

관을 태운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진 않은듯 하다. 

그런데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땅을 거닐수도 있나 ? 

죽어서도 고향에 못가게 된... ㅠㅠ


부산신사에는 지금도 꽃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직계 후손들이 만들어 팔고 있는 도자기 가게도 있다고 한다. 사이트도 있다.



히라토 마츠야마 https://www.hiradoshouz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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